베드로와 요한이(36), 말동무, 길동무, 그리고 어깨동무

길동무, 말동무, 그리고 어깨동무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킨 역사적인 어느 일요일 오후, 두 사나이가 지친 듯 침통한 표정으로 예루살렘을 떠나 7마일 서쪽의 작은 마을 엠마오로 향하고 있습니다. 

 

난데없이 길가에서 접근하는 낯선 남자,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소개도 없고 드라마나 영화 같은 극적인 만남이 바로 이루어 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누가'는 이 낯선 남자를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예수라고 소개하고 다른 한 사람은 ‘글로 바’라고 밝혀주고 있지만, 나머지 한 사람은 끝까지 베일로 가렸습니다. 

 

세 사람이 동행하는 길, 길동무에 말동무하며 제법 진지하고 친근해 보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한 주일 -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광란의 유월절과 ‘캥거루 법정’의 사형 선고, 모든 과정도 절차도 생략한 채 번개 치듯 해치운 장례식, 그리고 아침에 묘에 갔던 사람들이 돌아와 무덤 문이 열리고 시체만 감쪽같이 증발했다는 믿을 만한 증언!

 

그들은 전에 만나 적이 있는 예수와 예수에 관한 이야기하면서도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서로 얼굴을 보면서도,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7마일을 함께 걸으면서도, 그가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인 것을 알면서도, 대 제사장과 관리들이 그를 잘못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알면서도!

 

3일 만에 무덤에 갔던 여자들의 시체 증발을 증언을 들으면서도, 선지자들의 예언을 설명하면서도, 말씀을 풀어 설명할 때도, 날이 저물어 그 낯선 사람을 집안으로 초대할 때도, 식탁에 앉을 때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그 낯선 사람이 잡수시며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저들에게 주실 때, 눈이 열려서 그 사람을 알아봤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들의 눈을 가려 알아보지 못하게(They were kept from recognized him) (눅 24:16)하고 또 눈을 떠서 알아보게(Their eyes opened and they recognized him) (눅24:31) 했을까요?

 

물론 눈을 가려서 알아보지 못하게 한 것도 눈을 열러 다시 알아보게 한 것도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가려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셨고 또 눈을 열어 아들을 알아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알아보는 순간 그는 방에서 사라졌습니다. 부활하신 그는 우리와 똑같은 육신과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특이한 사실은,

그가 7마일을 동행하며 말동무 길동무를 하면서도 자신이 주인인 예수라는 사실을 말해주지도, 못 자국을 보여 주지도, 믿음을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를 알아보는 순간 그가 누구신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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