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의 항해(17), 철학이냐, 복음이냐?

바울과의 항해 (17) , 철학이냐, 복음이냐?

사도행전 17장 13~23절

 

신사의 도시 뵈뢰아, 데살로니가에서 서쪽으로 60여 마일 떨어진 이곳 회당에서 바울은 마음껏 메시아의 복음을 전했고, 신사적인 뵈뢰아 사람들은 집에 돌아가 그런가 하고 바울에게서 들은 복음을 확인하므로 더 많은 열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방해, 사탄은 더 크고 무서운 박해와 핍박을 합니다. 데살로니가의 불량배들이 그곳 회당까지 쫓아와서 또다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므로 더 복음을 전 할 수 없게 합니다.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뵈뢰아에 남겨두고, 형제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급히 밤에 아덴(아테네 Athene)으로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우상과 철학, 건축과 조각의 도시 아덴 -.

먼저 착한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는 동안 아덴 시내를 둘러보며 시내 곳곳에 가득한 우상을 보고 흥분과 분노로 가득 차올랐습니다. 인구보다도 더 많은 신이 있었다고도 하는 아덴, 거리나 공원들에 셀 수도 없이 만들어 세워진 우상의 조형물들, 수호의 신을 아테네(Athene)시 중앙의 가장 높은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을 짓고 그를 숭배했습니다.

 

주전 438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민족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의 지도로 허물어진 성전을 수축하고 율법을 재정비하여 유대주의를 재건해 가던 시기에 완성된 건물입니다. 마라톤 발생지로 알려진 아덴, 한 젊은이가 전쟁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달려온 마라톤 벌판, 42.195Km, 인간의 한계점 같은 거리를 달려 승전보를 알리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라톤은 그래서 더 유명합니다.

 

아덴에 머물면서 바울은 안식일에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평일에는 장터거리에서,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행 17:17) 하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바울은 당대에 철학의 두 산맥으로 알려진 에비구레안 (Epicurean)과 스토익(Stoic) 철학자들과 부딪쳤습니다.

 

헬레니즘을 대표하는 전통 깊은 철학의 두 학파,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

인간에 바탕을 둔 철학이냐? 하나님의 메시아에게 바탕을 둔 복음이냐? 인간의 근본과 사후를 정의하지 못하는 철학은 논리적인 바울의 설명에 압도당하자 어떤 사람은 바울을 ’말쟁이‘, 혹은 ’수다쟁이’로 몰아붙이며 비아냥거리거나 또 어떤 사람들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고 지나치며 무시합니다. 그러다 바울은 두 학파의 몇몇 철학자들에 강제로 아레오바고 재판장으로 끌려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교리를 전할 기회이자 위기를 맞습니다.

 

아래오바고, 아덴의 야외 재판장, 종교와 교육, 살인죄를 다루는 오픈 광장, 층층이 올려 쌓은 돌계단을 가득 메운 아덴 시민과 철학자들, 그리고 홀로 단위에선 바울! 이제 복음은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의 장에 섰습니다.

 

아덴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되고 당대 세계의 심장부 불리는 로마까지 복음을 전할 것 인가, 아니면 여기서 막히고 허황한 교리를 전하는 바울은 재판에 회부되어 처벌을 받을 것인가? 긴박하고 긴장된 순간이 흐른 후, 먼저 바울의 복음에 대한 설명이 있고 철학자들의 질문 공세가 뒤를 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하시며 그의 입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 (Plan of Salvation)과 독생자를 통한 성취를 설명하십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설교 가운데 이방 지식인들을 상대로 한 ‘샘 풀’ 설교의 내용은 명백하고 확실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그가 창조하신 만물 위에 자신을 나타내시고,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시므로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또 서론,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결론의 순서로 진행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복음입니까? 인간의 철학입니까?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철학을 ‘사람의 전통과 초등학문의 속임수’라 하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죽었다.’ 말합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골 2:8; 20] 사람의 전통과 속임수, 초등학문 철학, 그러나 우리에겐 영원한 진리 되신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계속)

Previous
Previous

바울과의 항해(16), 데살로니가의 소동

Next
Next

바울과의 항해 (15), 빌립보 간수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