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의 항해(16), 데살로니가의 소동

바울과의 항해 (16), 데살로니가에서 소동이 일다.

사도행전 17장 1 ~ 14절 

 

빌립보 감옥에서 나온 바울 일행은 누가를 현지에 남겨두고 100마일 항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도착했습니다. 두 도시 간의 거리가 30마일 정도 떨어져 있었으며, 유대인의 회당이 없어 적당한 전도기회를 얻지 못한 바울은 바로 데살로니가로 직행한 것입니다.

 

자유의 도시 데살로니가, (현재는 살로니키로 불리 움) 로마로부터 자유의 도시 (free city: 선거로 대표를 뽑는 system을 가지고 있었음)'로 불렸고, 마게도니아의 수도이며 상업의 중심지인 이곳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어 회당이 있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바울은 세 안식일을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 했습니다. 이는 3주간만 복음을 전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울은 이곳에 머물면서 스스로 일을 하여 선교비를 충당하였고, 빌립보 교회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두 차례나 받았으며, 데살로니가 교회의 구성원들이 대부분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 안식일 이외에도 오랫동안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면서 손수 일을 해서 선교비용을 마련했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도움도 두 차례나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머문 기간을 계산케 해 줍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의 메시지는 부활이었습니다. 부활은 우리 믿음에 중요한 것(important)일 뿐만 아니라, 첫 번째로 중요한 것 (first importance)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믿음이 전부가 부활에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을 것이요; 만일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으면, 복음은 없을 것이요; 만일 복음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요; 우리는 아직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 안에 죽은 자들은 소망이 없는 자들이며; 우리는 그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장차 올 부활의 약속이 없고, 우리 생이 이생뿐이면, 우리는 가장 불쌍한 패자 (looser)들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세 안식일 사역은 많은 헬 라인들의 영혼을 구원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유대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시기하여 불량배를 동원, 그들의 복음 전도를 방해했습니다. 급기야 형제들은 밤에,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남겨두고, 바울과 실라를 45마일 거리의 베뢰아로 보냈습니다. 이제 선교팀은 셋으로 나뉘었습니다.

 

'누가'는 빌립보에,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에, 그리고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에-. 선장이신 성령의 하시는 일입니다. 때로는 긍정적으로 그러나 어떤 때는 부정적으로 일하시는 것은 배워 오고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더 신사적이고 더 학구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가 회당에서 전하는 말씀을 듣고 소동하거나 시기하지 않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하고 '누가'는 적고 있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하나님은 간절히 말씀을 사모하고 날마다 상고하는 영혼들을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곳에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탄이 자신들의 선교사를 베뢰아로 급히 파송 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을 반대하던 불량배들이 베뢰아 까지 온 것입니다. 가는 그곳마다 대결의 장이 됩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선포되는 곳이면 사탄도 선교팀을 급히 파견하여 바울과 실라를 훼방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하나님의 선교팀 승리로 끝이 납니다.

 

사도행전 17장을 열면서 선교팀은 세 지역을 항해했습니다. 그냥 지나친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 복음은 받았으나 큰 훼방도 받았던 데살로니가, 그리고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한 베뢰아……. 마치 오늘날 복음 전도의 쌤풀 (sample)을 열거한 세 도시의 항해는 이렇게 마치고 다음 행선지 아덴 (아테네: Athen)으로 향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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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 베뢰아 사람들 (행 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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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의 항해(17), 철학이냐, 복음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