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의 행해 (21), 우상제조공장

바울과의 행해 (16)

사도행전 19장 21~40절 (우상제조공장)

선교팀이 항해 중 가장 오래 머문 기간 3년, 그리고 에베소,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신전, 127개의 대리석 기둥으로 지어진 건물로 그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뤄 이를 구경하기 위해서 각 지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도시는 항상 바쁘고 분주했습니다.

이를 놓일세라 신전 주변과 도시에는 신전의 모형과 신상을 만들어 파는 business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에 데매 드리오라는 사업가는 아예 신상을 만들어 파는 제조공장을 차리고 영업을 했습니다.

우상제조공장, 신의 모양이나 신전의 모형을 각기 다른 재료로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 이 회사의 영업에 ‘Red Light’ 켜졌습니다. ‘신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안에 갇혀 있을 수 없고, 사람의 아이디어와 손기술로 만들 수 없다.’라는 바울의 가르침, ‘유일한 신은 하늘에 계시며 사람의 기술로 만들 수 없으니 아데미 신전에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신상은 참 신(true God)이 아니므로 하늘에 계신 참 신이신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이 메시지가 힘을 얻어 퍼져나가자 신전의 모형이나 신상을 사가던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줄기 시작했고 회사는 줄어드는 이윤으로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는데, -

우상 제조공장의 주인 데매 드리오, 초조해진 그는 생산직원과 판매원들을 모으고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라고 충동질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이 경영하는 우상제조공장의 영업실적이 부진해 가는 것을 바울이 복음을 전하므로 신전이 무시당하고 모든 지역에서 아데미 여신이 권위를 잃게 된다는 엉뚱한 쌩 떼를 씁니다.

같은 시각,

에베소에 머물렀던 선교팀은 다음 목적지로 떠날 준비를 합니다. 바울은 동역자인 디모데와 에리스도 두 사람을 먼저 마게도니아로 보내고 뒷마무리를 하고 에베소를 떠나 로마, 당시 세계 최고의 정치 군사 문화 교육 등의 중심지인 로마로 갈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그 잠시 남아 있는 기간에 큰일 아마도 항해 중 가장 큰 일의 하나로 기록될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상제조공장주인인 데메드리오가 에베소 사람들을 충동하여 25,000이 모이는 에베소 open 광장에 모으고 바울을 끌어내어 처단하려고 흉계를 꾸린 것입니다.

 이만 오천의 군중이 함성을 지르며 바울을 처단할 것을 소리를 지르며 “바울을 없이 하자.” “바울 나오라.”라고 할 줄 알았는데 엉뚱한 일이 벌어 졌습니다.

에베소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동상이몽이 생긴 것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들은 에베소 사람들의 우상 아데미 신전과 신상을 없애기를 원하며, 에베소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의 신 아데미에 오기를 바라는 형국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날의 큰 행사는 에베소 시의 서기장의 만류로 종결 나고, 친구들의 만류로 행사장에 들어가지도 못한 바울은 서둘러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항해하려는 자신의 계획을 진행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사도행전을 ‘성령의 전’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통제 불가능한 일들이 생기지만 상상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방법으로 간단히 해결되면서 복음은 계속 전파되어가는 것입니다.

구약의 여러 세대를 거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으로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한 계획을 진행하셨던 하나님, 이제 버림받았던 그 메시아,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을 영광 가운데 다시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Plan of Salvation)은 오늘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포함하는 그 영원한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세세토록 돌려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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