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의 항해 (22), 새역사의 장이 열리다.

사도행전 20장 1절 16절 (안식일이 주의 날로 ….)

 

정든 에베소, 비록 떠나기 직전 엄청난 파도에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3년간 밤낮 눈물을 흘리며 복음을 위해서 노심초사했던 곳, 이제 출항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작별인사, 항해는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나아를 거쳐 그리스에 도착하여 3개월간 정박합니다.

뱃길을 재촉하여 이방인의 교회들에서 모금한 헌금을 전달하고 로마로 향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속히 출발하고 싶지만, 바울을 태운 무역선은 3월간의 긴 정박을 선언하고 항구에 발을 묶었습니다.

그리스에 정박하여 짐을 내리고 다음 항구로 갈 승객과 화물을 싣는데 필요한 시간, 이 기다림의 석 달 동안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하여 보내고 자신에 대한 증오가 갈수록 증가하여 행여 항해 중 바다에 수장시킬지도 모르는 위협 때문에 걸어서 마게도니아로 되돌아가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을 대표하는 일곱 명의 파견자들과 함께 승선하여 빌립보를 거쳐 드로아에 도착하여서 일주일간 정박합니다.

드로아, 교회사에 새로운 장을 연 역사적인 장소,

그 곳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바울은 안식 후 첫날 떡을 떼기 위해서 모입니다.

주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 유대인 역사 이래로 안식일이 아닌 날, 양이나 염소 등 짐승의 피가 아닌 빵과 포도주의 상징물로, 제사장이나 레위 인이 아닌 평민 백성들이, 성전이 아닌 곳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첫 번째 장을 여는 상상하기에도 엄청난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바야흐로 교회 시대…….‘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하나님의 성전에서 안식일에 유대인들만 여호와께 드렸던 희생의 제삿날이 이제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구분이 없이 교회에서 빵과 포도주를 놓고 주께 드리는 만찬 예배로 바뀐 것입니다!

다음날 일찍 항해를 출발해야 하는 바울은 밤중까지 방에 가득한 형제들과 여러 개의 등불을 켜서 놓고 말씀을 강론하게 되었고 졸음을 견디다 못한 유두고라는 청년 (아마도 12살 정도)가 3층 창문에 걸터앉아 있다가 땅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으나 바울의 기도로 다행히 생명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유두고는 그 이름으로 보아 노예 신분을 가진 소년일 것으로 추측되며 온종일 주인이 시키는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늦은 시각에 만찬 예배와 설교에 참석하였을 것이며 방안에 꼭 찬 상전과 먼저 온 사람들의 틈에서 창문에 걸터앉는 것이 그의 유일한 자리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긴 했으나 추정되는 그의 나이 신분 환경 조건 등을 고려해 볼 때 유두고는 새로운 신앙을 찾아온 구도자의 한 사람입니다.

날이 밝아 월요일이 되자 바울은 누가 디모데 디도 그리고 지역교회를 대표하는 파견자들과 함께 드로아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무역선에 몸을 싣고 파도를 가릅니다.

만찬 예배, 그리스도인의 가장 고상한 의무이자 특권,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신 새 언약의 상징, 빵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되신 몸을 상징하며 잔은 그의 흘리신 피를 상징합니다.

한 마리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희생되신 그리스도를 떡과 잔을 통해서 그의 돌아가심을 기념하고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신약교회가 지키는 두 가지 예식 중의 하나입니다. 후에 바울은 고린도 전서 11장에서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 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돌아가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라고 적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 엄청난 변화와 도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이를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속죄를 믿을 때 우리에게도 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잠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 2장 14~18절)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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