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의 향해 (34) 이 선언 때문에 -
이 선언 때문에 -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
출처 불분명한 말이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잘 나가고 교만한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슬픈 순간도, 교만한 순간도 지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도덕하고 악명높은 벨릭스가 물러나고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하는 역사적이 격변기의 돌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바울의 문제는 미결로 남긴 체 -
벨릭스와 '터치' 교대한 베스도는 이름만 다른 것을 아니라 성분, 교육, 인품, 스타일, 등 모든 것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고상한 성품에 부티를 지니고 상류사회를 대표할만한 배스 도는 이후 단지 2년만을 세상에 더 머물고 떠난 단명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은 전임자나 후임자나 마찬가지입니다.
부임하자마자 3일 만에 가이사라 총독부를 떠나 예루살렘 시찰을 떠나자 유대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베스도를 다시 물고 늘어집니다.
바울을 고소하겠다고 -.
예루살렘에서 죄를 범한 사람이니 예루살렘으로 다시 데려와 재판하자고 요구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죄를 짓다 끌려 나와 로마 관정에 보호되었으나, 유대인을 피해 야밤에 가이샤라로 '비밀 운송 작전'을 펴 겨우 총독부 감옥에 투옥된 그를 다시 데려와 예루살렘에서 재판하자고…….
그러나 그들의 '드러내 보이지 않고 마음속으로 드러나지 않은 일을 꾸미는 속셈', 꿍꿍이는 알 수 없지만, 성경은 그들이 바울이 가이샤라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는 도중 '그를 죽이기 위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지나가는 길에 매복했다고 골치 아픈 문젯거리를 단반에 처리 해 버리고 솟을 씻으려는 꿍꿍이속셈법.
틀림없이 꿍꿍이속이 있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감춰도, 숨겨도, 꿍꿍이속은 더는 꿍꿍이속이 아닙니다.
백주에 환히 손바닥 위에 펼치듯 보이고 맙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피조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는 전능하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거절입니다.
대신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 (행 25:5)
이번에도 보기 좋게 거절당한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 -
곧 가이샤라로 돌아온 베스도를 따라 가이샤라로 다시 돌아와 여러 말로 바울을 송사했지만, 증인이나 증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베스도가 다시 바울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재판을 받으려느냐?”…….
그때 바울의 입에서 아주 무서운, 역사를 뒤집는 선언이 터져 나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내가 차라리 로마로 가서 황제의 판결을 받겠노라!”
이 한마디에 바울의 운명과 성경의 모든 기록이 달라지고 인류의 역사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바울이 선언만 하지 않았어도 베스도가 직권으로 석방할 수 있었는데, 그리고 역사는 이렇게 전개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