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의 항해 (30), 돌격 태세입니다.

한 치의 양보 없는 돌격태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혼합 되에 각기 제복을 갖추어 입고 들어오자 산헤드린의 분위기는 엄숙합니다. 바리새인 중엔 낯익은 옛 동료의 얼굴도 보입니다. 

“나도 너희들과 같은 패거리였는데, 쯧쯧…….”

그들의 내부 사정을 손바닥처럼 너무도 잘 아는 바울이 입을 열고 큰소리로 외칩니다.

“여러분 형제 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행 23:6)

말이 떨어지자 바리새인들이 먼저 무섭게 반응합니다.

아니 우리의 형제가 부활을 전하는 것 때문에 심문을 받는다니, 이건 너무 당연한데….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아니 이놈이 존재하지도 않는 부활이라는 걸 어떻게 믿고 전한다고 잠꼬대냐!'

두 파로 쫙 갈리는 공회, 마치 미국 국회의 민주당과 공화당이 갈려서 대립하는 것같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돌격태세입니다.

삿대질과 고성이 오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식식대며 체면도 염치도 품위도 체통 등도 모두 남들의 이야기입니다.

서로 엉키고 뒤섞여 몸싸움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큰 낭패가 생길 듯합니다.

한쪽에 선은 '잘못한 것이 없다.'하고 다른 쪽에선 '교리를 범한 범법자.'라고 소리를 치는 모습을 지켜본 로마 천부장.

마치 바울을 서로 자기편이라고 사지를 잡아당겨 찢겨 죽기라도 할까 봐 죄수 바울을 잽싸게 다시 영내로 몰아넣고 산헤드린 공회를 해산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신 지라.”(행 23:11) 라고 말씀하셨다고 '누가' 가 기록했습니다.

그 출처가 환상이나 꿈, 음성이나 마음속의 생각 등, 어디였는지는 우리의 영성에 맡겨둡니다. 

“야, 넌 왜 이리 말썽꾸러기냐? 나 아니면, 오늘 넌 끝장날 뻔했다. 잘 좀 해 봐 분위기 파악 먼저 하고!” 하시며 꾸짖을 만도 한데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담대하라.”라고 격려하시며, 과거 예루살렘에서처럼 앞으로 로마에서도 그리스도를 증거하여야 할 것이라고 지난번 약속을 재확인하십니다.

과거의 섬김을 칭찬해 주시고 앞으로 섬김을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도 때로는 실패로 인한 절망 우울증 무기력감 외로움 불안 고립감 스트레스 분냄 자포자기 등을 겪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실패와 절망으로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격려와 희망, 위로와 승리의 '어드바이저'입니다. 

2020년 팬더믹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성경 구절을 함께 나눠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할렐루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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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2일, 말라기 강해 (1) 사랑과 무관심 (말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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