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1), 뻔뻔함의 극치입니다. (말 1:1-5)
뻔뻔함의 극치입니다.
뻔졬뻔함이 극치를 이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덤벼든다거나, 도망가도 시원찮을 도둑놈이 몽둥이를 들고 주인에게 대드는 대책 없는 사람, 잘못을 저지른 놈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말합니다.
주객전도(主客顚倒), 객반위주(客反爲主), 본말전도(本末顚倒) 등의 한자어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메신저”라는 뜻을 가진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
구약을 closing하고 신약으로 넘어가는 다리입니다.
주전 450-430년 - 에스라, 느헤미야 선지자와 동시대에 살던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한 후 100여년-
백성도 지도자도 지쳐 기진맥진, 사회는 병들고, 타락에 타락을 거듭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마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디에 계시는가?”
그때 말라기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 (말 1:2)
과거의 선택과 사랑 - 에굽에서 인도해 내시고 광야를 지나게 하셨을 뿐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 비록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은 겪었지만, 약속하신 그대로 다시 고토에 돌아오게 하셔서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게 하시고 프로그램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시는 하나님 -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가 말씀하신 대로 사랑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느냐?”라고 대듭니다.
선택과 사랑, 특혜라는 특혜는 남 줄 것 없이 모두 받은 백성들이 뻔뻔하게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외치던 그 때
로부터 400년이 지난 후 -
인류 역사를 뒤엎는 엄청난 사건이 터집니다.
공포의 십자가, 저주와 더러움, 죽음의 몸서리치는 십자가 사건 -
하나님의 독생자가 세상에 오시자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죄도 정하지 못하고 십자가 달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약소했던 대로 정확히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성경의 모든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십자가가 증거입니다.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이 그 증거입니다. 또 증거는 넘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등의 말할 수 없는 괴상하고 야릇한 駭怪罔測(해괴망측) 한 말들을 합니다.
오늘날의 사람들과 말라기 시대의 사람들은 너무 닮았습니다.
뻔뻔함의 극치를 이루고, 적반하장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