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의 항해 (25), 휘발유 통을 안고 불길 속으로 -

휘발유 통을 안고 불길 속으로 - 

긴 팬더맥 기간을 지나가면서 죽음이 더욱 가까이 주변에 아른거립니다. 모두 불평 없이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유지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 건강, 또 건강을 챙겼지만 해여 나에게 닥쳐올지 모르는 불행을 불안과 조바심으로 달래 보기도 했습니다. 

또 엎친 데 덮친 불행은 이 기간에 세상을 떠난 분들을 보내드려야 하는 아픔과 아쉬움일 것입니다. 

온 인류가 가까이 한 죽음 -

묘지에 관한 관심,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과정이 다시 조명되어 오기도 했습니다.

사람마다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공간, 묘비에는 어김없이 세상에 태어난 날짜, 세상을 떠난 날짜, 기념되는 행적과 기념이 되는 말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은 92일간에 거친 3,307마일,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가지 말라는 눈물의 권유를 뿌리치고 에베소 성도들과 작별인사를 합니다.

막무가내인 바울 -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예루살렘에 올라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시나니”라고 말합니다.

휘발유 통을 안고 불길 속으로 들어가겠노라고 우겨대는 바울을 당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마지막 집회를 마치고 서로 목을 껴안고 뜨거운 이별의 '키스'를 합니다.

이 입맞춤이 'Hand to Mouth'인지, 'Mouth to Cheek'인지, 'Mouth to Mouth'인지 가려볼 필요도 없습니다.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흑흑 대며 울어대는 그야말로 눈물바다입니다.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이별이 바닷가까지 이어집니다.

이별 -

어떠한 존재와의 헤어짐을 말한다고 정의하는 이별은 주로 한 쪽이 떠남으로써 이루어지나 다만 현대에 오면서 커플의 헤어짐으로 개념이 상당히 좁혀졌습니다. 또 많은 소설과 영화나 노래 가사의 제목이 되기도 하는데…….

바울은 형제들을 뒤로하고 배에 오릅니다.

어쩌면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마지막 길을 눈물을 머금고 뱃길을 돌립니다. 

예루살렘으로 로마로…….

잔뜩 낀 먹구름이 언제 소나기가 되어 쏟아질지 예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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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다시 일어서는 힘: 사명' (사 6:1-8), 김종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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