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의 항해(31) 명약관화(明若觀火) -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명약관화(明若觀火) -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밝기가 마치 불을 보는 것과 같이 아주 뚜렷해서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말을 일컫는 명약관화(明若觀火)라는 고사성어는 요즘 유행하는 '안보다도 비디오'라는 유행어에 해당하는 말일 것입니다. 보지 않아도 본 것처럼 내용을 꿰뚫어 알 수 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 불려 나가 사지가 찢길뻔한 위기에서 로마군인 이 관사로 밀어 넣지 않았으면 상상할 수 없습니다. 로마로 가는 것은 물론 예루살렘으로 살아 나갈는지도 모르는 날이 저물고 밤이 깊었습니다. 

과연 오늘로써 모든 것이 끝장난 것일까? 밤이 깊도록 기도하고 있을 때, 어두움 가운데서 조용히 들리는 또렷한 음성, 미처 눈을 뜰 겨를도 없이 음성의 주인을 알아차렸습니다. “담대하라!”

아! 그가 여기까지 찾아오셨구나. 그리고 내 곁에 계셨구나!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행 23:11)

그 밤에 과연 바울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기도를 하고 있었을까? 아마 무릎을 꿇고 앉아 로마로 가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명약관화, 안보다도 비디오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로마로 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답을 주셨습니다. 

로마로 가게 된다는 확신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에 온 것처럼 로마로 간다는 확신입니다. 이보다 더 분명하고 정확한 표현은 없습니다. 긴가민가하고, 아리송하거나, 알쏭달쏭하지 않습니다. 모호하고 헷갈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것처럼 로마에도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날이 새면서 전개되는 바울 참수 작전 -

40여 명의 유대인들이 대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나와 바울을 죽이기 전까지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었습니다. 산 넘어 산, 갈수록 태산이며 설상가상, 전오후랑 입니다. 

이단자 바울을 죽이겠다는 맹세는 하나님의 계획 앞에 물거품입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 '영생'에 대해서 명약 관화하게 알지 못하고 갈팡 질팡, 긴가민가한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구원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Salvation by faith thru Jesus Christ, Once Saved, Always Saved입니다. Hallelujah!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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