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824 겟세마네 동산의 ‘미스터리’

예수께서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날 밤,

그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자신의 죽음 앞에 비겁한 겁쟁이였습니다. 두려움에 떨었고 모세혈관이 타는 닭살 공포를 갖고 거의 죽어가는 사람처럼 신음했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바다 위를 거르시고, 풍랑을 잔잔케 하셨으며,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등 하나님의 메시아로 당당 하셨던 그가 왜 이렇게 처절하고

입술 떨리는 공포를 가졌을 까요?

고통스러워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며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막 14:34-36) 다른 방법이 있으면 이 죽음을 피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애원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침묵으로 일관 하셨습니다. 그가 침례를 받을 때도, 변화 산에 계실 때도 하늘을 열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기쁨으로 응답하시던 하나님께서 정작 응답이 가장 필요한 이 순간은 침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순간, 그의 아버지 하나님은 끝내 그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침묵으로 외면하셨습니다. 그는 아버지로 부터 버림 받고 거절당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받고 떨어지면 지옥을 보게 됩니다. 그는 그 순간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무서운 지옥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는 무섭고 떨리며 땀구멍에서 피가 새어 나왔습니다!

겟세마네는 아람어로 “기름 틀”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그에게 담당 시켜 올리브 압착기에 넣고 기름을 짜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눌러 짜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 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의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히 12:2) 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한편으로 지옥의 심판과 형벌을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십자가 저편의

우리의 구원을 보셨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크고 두렵고 무섭지 만, 그 십자가를 통한 우리 구원을 볼 때 개의치 않고 기쁨으로 그 무서운 고통을 당하실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골고다에서 당 할 고통 때문에 괴로워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미스터리, 그는 우리의 죄와 고통을 대신 지셨습니다. 핏방울과 같은 땀방울의 기도, 모세관이 피로 막히는 두려움과 공포, 제자들과 하나님 사이를 오가면 드린 기도는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 압착기 '기름 틀’에 들어가 몸을 윽 깨고 피를 흘리는 고통 가운데서 지옥을 볼 필요가 없어 졌습니다. 그가 우리 자리에 우리 대신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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