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816 오늘 여기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오늘 여기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창세기에서 가장 자세하게 기록한 인물 요셉, 그 가운데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을 꼽는다면 아마도 요셉과 그 형들이 22년 만에 애굽에서 만나는 광경일 것입니다. 하루를 즐거운 파티로 보내고 실을 수 있는 만큼의 음식과 돈을 되돌려 주며 다음날 아침 이별을 고 했던 요셉과 형제들. 막내동생 벤냐멘에 넣어둔 은 잔을 핑계로 다시 애굽으로 불러들인 요셉은 무서워 벌벌 떨며 쩔쩔매는 형들을 심문하며 마지막 시험을 다하고 나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리며 '방성대곡’합니다. 통역하는 애굽사람과 시중들던 사람들을 모두 내어 버리더니 형들에게 가까이 오기를 청합니다. 그리고는 영문모르고 다가오는 그들에게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고 히브리말로 외침니다.
엉엉 울어대는 요셉과 그저 어안이 벙벙하여 입이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유구무언이요 'SPEECHLESS' 상태의 순간이 얼마쯤 열 두 형제들 사이를 흘러 간 후에 요셉은 계속 말을 이어 갑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요셉은 몰랐습니다.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어머니 라헬에게서 태어날 것도, 4명의 어머니와 10명의 형이있는 가정에 태어날 것도, 아버지가 자신에게만 구별되게 채색옷을 입히고 편애 하는지도, 자신이 왜 그런 꿈을 꾼것도 그 꿈의 해석도 몰랐습니다. 또 언제 어떻게 그 꿈이 성취될 지도 몰랐고, 아버지 심부름으로 들에 갔을 때 형들이 죽일 계획을 하는 것도 구덩이에 던질 것도 몰랐습니다. 때마침 애굽 상인이 지나갈 것도, 상인들이 그를 은 20에 살 것도 몰랐고 보디발의 집에 다시 팔릴 것도, 그집 가정 총무가 되고 그 주인의 부인의 유혹을 받을 것도 몰랐습니다.
유혹을 물리치고 감옥에 갈 것도, 거기에서 바로의 두 관원장을 만날 것도, 술 맡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꿈을 꿀 것도, 그 꿈해석을 자신이 맡을 것도 몰랐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이 된 만 2년 후에 바로가 애굽 전국의 엘트들이 지혜와 지식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꿈을 꿀 것도 몰랐고, 술맡은 관원장이 자신을 바로의 꿈을 해석하도록 불러 줄 것도 몰랐습니다. 요셉이 바로의꿈을 해석해 주고 총리로 임명 받을 것도, 7년 풍년이 지나고 흉년이 시작된 2년 후에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올 것도 요셉은 몰랐습니다!
형들은 22 년간 숨겨온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 기간 내내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을 속인 자신들 만의 비밀입니다. 요셉이 팔려갈 때 뒤를 돌아보며 외치던 애걸하들 들리던 그 음성이 머릿속에 머물렀습니다. 만일 형.제들이 팔지 안했으면 보디발의 집에 되 팔지 안했으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지 안했으면, 감옥에 가지 안했으면, 감옥에서 바로의 신하들만 만나지 안했으면, 술맡은 복직되어 바로의 꿈을 해석하도록 천거만 안했으면, 바로의 꿈만 해석해 주지 안헸으면 요셉의 오늘은 없었습니다. 이스리엘을 애굽으로 불러내려 나라를 세우고 다시 불러내어 가나안으로 이주 시킬려는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요셉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도 돌아보시고 인도하십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손길이 자신의 등뒤에서 일 해 오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비결은 요셉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Part Time이 아니라 Full Time,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내내 요셉은 전적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판단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도,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 할 때도, 바로가 꿈을 꾸고 요셉을 불러 해석을 구할 때도, 두 아들을 낳아 이름을 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지었을 때도, 요셉의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왔을 때도 .... 요셉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이 교회오면 하나님 찾고 교회문 나서면 세상사람들이 되는 Sunday Christian 혹은 Part time Christian이 아닙니다. 성경공부하고 설교듣고 기도하며 교회에서만 찾는 멀리 계시는 하나님, Show Window나 보석상자에 가둬둔 요술쟁이 하나님, 성경안의 하나님 교회안에 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계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기쁨의 반대 말은 슬픔, 감사의 반대말은 불평이나 원망, 희망의 반대 말은 절망 혹은 낙심이 아닙니다.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이들의 반대말은 불신앙입니다. 믿음이없기 때문에 작은 아픔에도 슬퍼하고, 믿음이 없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불평과 원망을 하고, 믿음이 없기 때문에 작은 어려움에도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미워하는 감정을 털어내지 못하고, 믿음이 없기 때문에 이루지 못한 것을 실패라고 말한다.
그렇습니다. 믿음입니다. 요셉의 그 믿음으로 이제 여러분은 여기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라고 말하실 수 있는 믿음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