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의 여행(5), 지나고 보면 다 그의 손길입니다.

지나고 보면 다 그의 손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선교여행,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왜, 더베에서 되돌아갔을까?

왜, 마지막 선교지 더베에서 활동 기록이 없을까?

왜, 루스드라, 이고이온, 안디옥 다음으로 출발지 버가가 아닌 앗달리아로 갔을까?

왜, 돌아가는 길에는 전도는 하지 않고 제자 훈련만 했을까?

왜, 이 신생교회에 장로가 필요했을까?

 

어떤 방법으로 장로들을 선출했을까?

왜, 구부로는 들리지 않고 by pass 했을까?

 

안디옥교회에서 일차 선교여행 보고의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선교보고를 받는 안디옥교회 성도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안디옥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을까? 

왜, '누가'는 갈라디아서 기록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왜, 왜 ...... ??

그러나 

'누가'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이신득의의 교리를 확실하게 나타냈습니다.

이방인도 유대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복음의 리더쉽에 베드로와 요한에서 바울과 바나바로 바뀐 것도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특별히 '누가'는 베드로와 바울을 비교해서 대등함을 과감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 베드로와 바울의 사역을 비교해 봅니다.

두 사람 모두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긴 설교를 했습니다. (베드로는 2장, 바울은 13장)

두 사람 모두 앉은뱅이를 고쳤습니다. (베드로는 3장, 바울은 14장)

두 사람 모두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베드로는 8장, 바울은 13장)

두 사람 신격화되어 예배를 받을 기회를 얻었습니다. (베드로는 8장, 바울은 14장)

베드로는 요한이 동역했고, 바울은 바나바가 동역자로 함께 일했습니다.

 

한가지 더욱 분명하고 뚜렷한 메시지는 

하나님의 성령이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함께 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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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6일, 바울의 마지막 부탁 (딤후 4:9-18), 정영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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