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14 주일 예배 한 시간을 위해서 -

주일 예배 한 시간을 위해서 -

주일 예배 한 시간을 위해서 목회자와 스텝들은 엄청난 시간과 물자, 자원을 들여 가장 의미 있게 하려고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의 노력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남는 시간, 자투리, 특별한 소일거리가 없어 주일 한 시간 '쇼'를 보기 위해 예배에 참석하지는 않는지? 골프, 쇼핑, 여행, 공부, 미팅 등 필요한 핑곗거리가 없을 때 부득이(?) 끌려나가지는 않는지…….

교회가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이 멸시를 받는다면 예배는 드릴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나님이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분이 아니면, 온 맘으로 전부를 드리지 않고 마음의 반은 세상에 두고 반은 하나니 앞에 앉아있다면, 우리 예배는 의미가 없다.

 

토요일 저녁부터 기다리고 준비하는 가슴 설레는 하나님과 만남!

그런데 동기가 부적절하면, 하나님을 경멸하면서 입술로 드리는 예배, 형식적으로 의무적으로 순서에 따라, 지루하고 부담스럽고 괴롭고 귀찮기까지 한 하나님과 만남……. 이런 예배는 오히려 하나님은 경멸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관에서 2시간, 한국 드라마에 몰두하여 시청하는 1시간, 가짜뉴스 유튜브에 몰입하는 시간, 운동경기 시청, 친구들과 수다 떠는 시간…….

이에 비해 1시간 예배는 지루하고, 목사님의 30~40분 설교는 너무 길게 느껴진다.….

 

구약 말기, 주전 4세기, 말라기 선지자 시대의 사람들이 그랬다.

예물은 눈이 멀어 짐승으로 가치가 없는 것, 사료나 축내고 두통거리인 절름발이, 병든 것, 점박이 상처 난 쓸모없는 짐승을 하나님께(?) 드렸다.

안 드릴 수 없으니 형식적으로 사람들의 눈에 거룩하게 보이기 위해서….

 

속임수, 눈가림, 양심을 속이는 예배가 공공연하게 드려지면서도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고 물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혹시 이런 모습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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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나아만의 터닝 포인트 (왕하 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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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4일, 마음의 곡간을 살피라(눅 6;39-45) 박광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