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의 여행 (4), 상상만 해도 궁금증이 밀려옵니다.
상상만 해도 궁금증이 밀려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자신의 발로 걸어 본 적이 없는 앉은뱅이 -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그렇게 태어난 ‘Handicap’입니다.
두 다리 신경이 두뇌의 명령을 받아 움직여 본 적이 없고,
다른 사람에 의존하지 않고는 움직여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치료를 받아 제 발로 일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면,
그 ‘스릴’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무슨 말을 제일 먼저 하게 될 것이며, 누구에게 가장 먼저 보이고 싶을까요?
상상만 해도 궁금증이 밀려옵니다.
사도행전에는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는 기적이 두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쳐주었고,
바울도 디모데의 고향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을 고쳐주었습니다.
한 사람은 구걸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을 어떻게 살았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나이 가족관계 등의 배경 소개는 전혀 없고…….
장소와 시간 고쳐준 사람은 각각 다르지만 같은 변화를 체험했을 것이며,
두 사람 모두 인생의 엄청난 전환점을 경험했습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일어서라”라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 미적거리거나 느물거리며 어물쩍 쳐다만 보지 않고 바로 일어섰고,
일어선 후에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여 자신들의 치료가 완전한 것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성경은 때로 죄인을 영적인 앉은뱅이에 비유합니다.
선택의 여지 없이 나면서부터 불구가 된 것이나 스스로 치료 불가능하다는 그것 외에
듣고 순종하여 구원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치료해준 구걸하던 앉은뱅이도 바울이 고쳐준 앉은뱅이도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듯이, 우리의 죄도 하나님께서 사해 주셨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죄인, 쾌락을 위해서 전전하던 죄 가운데 삶,
그러나 이제는 우리 스스로 앉고 서며 걷고 뛰기도 합니다.
영원히 고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