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25 '밀 서리', '보리 서리' -

'밀 서리', '보리 서리' -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 이름 봄은 즐겁고도 괴로운 기간이었단 쓰디쓴 기억이 있다.

진달래 개나리꽃이 피고 아지랑이 아롱거리며 노랑나비가 겨울을 지나고 활짝 핀 꽃들에 날아다닐 때면, 따스한 햇볕의 낭만보다는 보릿고개가 남긴 상처가 아려오는 듯하다.

그럴 때쯤 어린 나이에 배를 채우려고 입술이 파랗게 되도록 진달래꽃을 따 먹었고, 아직 추수하지 않은 '밀 서리', '보리 서리'를 했던 즐거움(?)도 있었다.

밀과 거의 같은 시기에 수확하는 보리가 들판에 누릇누릇 익어 갈 때면, 잘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지피고 누구의 밭인지 상관할 것 없이 밀이나 보리를 잘라 다 구웠다. 하얀 연기가 눈가를 스칠 때면, 연신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쳐, 대륙만큼이나 큰 지도가 뺨에 그리며, 까맣게 탄 밀이나 보리를 손바닥에 올려 비볐다.

손바닥이 까맣게 변한 것도, 밀을 털어 넣으면서 입가가 까맣게 변하는 것도 배고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손바닥에 놓고 비비고 후 ~ 입김을 불어 까맣게 탄 껍데기를 날리고 나면 끝이 약간 탄듯한 알맹이, 아직 뜨거운 그러나 노릇노릇하고 쫀득쫀득한 그 맛! 입안이 지직거릴 만큼 뜨거운데도 배를 채울 수 있어 마냥 즐겁기만 했다고 날 할까?

'서리'가 끝나면 모닥불을 끄고 자리를 떴지만, 손바닥과 입가엔 까만 '서리 마크'가 선명해 누굴 만나도 변명할 수 없는 증거지만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이겨가는 마을 사람들에겐 오히려 서로를 인식시키는 친밀감의 표시가 되었으니 말이다.

성경에는 천국의 비유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가운데 밀과 가라지 (마 13:24~30), 양과 염소 (마태 25:31~46), 열 처녀 (마 25 : 1~13) 등이 기록되었다.

양과 염소처럼 외형적으로 확연히 다른 동물도 있지만, 밀과 가라지, 열 처 여자의 비유는 외형적으로 구분이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밀과 가라지 -

같은 밭에서 같은 시기에 함께 자라지만, 외형적으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왜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까?

'밭'이라고 말씀하신 세상에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 영원한 생명의 씨를 뿌리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적 사탄도 곧바로 작업을 시작해 같은 밭에 유사품 씨를 뿌린 것이다.

영혼의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종교의 씨를 뿌렸다. 물론 유사품이다.….

그에게도 종들이 있고, 교회가 있고, 사역자들이 있고, 기적을 행하며, 생명 없는 현대종교 유사품을 마구 뿌린다. 그리고 그들의 통치 장소인 지옥으로 데려가 불에 태운다.!

밀과 가라지는 생김새나 자라는 것은 비슷하지만, 열매가 다르다. 아니 가라지는 열매가 없다. 

그래서 주인이 추수 때까지 기다려 밀을 곡간에 들이고 가라지는 불에 태우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도 돌아보자.

우리 주위에 열매 없는 거짓 종교에 속아 사는 사람들,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가라지 같은 사람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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